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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사> 이 책에 주목하는 몇 가지 특별한 이유에 관하여 - 최장집

작성자 : 관리자   |   등록일 : 2012-07-01   |   조회수 : 2321

추천사


이 책에 주목하는 몇 가지 특별한 이유에 관하여

 

최장집(고려대학교 명예교수)

 

1

이 책의 저자가 우리나라의 유력한 대통령 후보의 한 사람이라는 점을 생각할 때, 이 책은 몇 가지 흥미로운 포인트를 갖고 있다.


첫째, 우리가 지향해야 할 대안 사회로 ‘유럽의 길’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는 점이다.

역대 우리나라 유력 정치인 가운데 ‘미국의 길’이 아니라는 것을 이토록 분명히 말한 사람이 있을까 싶을 정도다. 지금의 유럽이 재정 위기와 실업 등 여러 문제와 씨름하면서 안팎의 도전에 직면해 있지만, 노동의 존엄성이라는 기초 위에 선 사회 통합적 복지국가 내지 발전 모델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나라는 없다. 성장과 복지, 고용의 중요성을 말하고, 평등과 자유 나아가 평화와 생태의 가치를 실천하고자 한다는 점에서 달라진 것은 없다고도 할 수 있다.


주변을 돌아보면 우리나라의 정치인들과 지식인들 내지 언론들도 이런 가치들의 중요성을 부정하지는 않는 것 같다. 그런데 내게 그들은 여전히 미국적 범위 안에 있고 그 안에서 개별적으로 그런 가치를 말하는 것으로 보인다. 일자리를 말하면서도, 그래도 노동 유연성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대기업의 전횡을 비판하면서도, 그래도 자유 시장 원리를 침해하면 안 된다고 말한다. 서민을 강조하면서도, 그래도 도덕적 해이는 안 된다고 말한다.

 

내가 볼 때 그들의 이념은 ‘그래도 미국의 길이다.’의 연장선상에 있다. 따라서 ‘더 이상 미국의 길이 아니고 유럽의 길이다.’를 말하는 이 책은 특별한 느낌을 갖게 한다.

 


둘째, 민주당이 실천해야 할 이념으로서 자유주의를 분명히 말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간 우리나라 야당의 역사를 보면 도대체 그들의 이념은 무엇일까 하는 문제가 늘 의문 사항으로 남아 있었다. 민족주의와 민주주의를 앞세웠지만, 과연 그들이 자유주의자였는지는 불확실했다. 분명 열정과 투쟁을 앞세우고 선과 악의 이분법을 즐겨 동원한다는 점에서 정치 행태의 측면에서는 자유주의와 거리가 멀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정책의 내용이라는 측면에서는 자유주의가 아닌 적도 별로 없었다. 야당이 정부가 되었을 때 그들의 정책은 자유주의 혹은 그것의 보수적 버전으로서 신자유주의와 다른 것이 아니었다.


그런 점에서 한국의 야당은 ‘주저하는 자유주의자’ 혹은 ‘행태는 유사 운동권이면서 내용은 보수적 자유주의’였다고 할 수 있을지 모른다. 반면에 이 책에서 저자는 자유주의의 진보적 가치를 말한다. 자유와 평등, 인권의 가치를 중시하고, 거기에 덧붙여 정의와 공정함, 공동체를 강조한다. 자유주의의 적극적 측면에 더 초점을 맞춤으로써 진보적 토대와 사회적 권리를 확대?강화하겠다는 분명한 뜻으로 읽힌다.


실제로는 주저하는 자유주의 혹은 보수적 자유주의의 내용을 가지면서 겉으로만 진보성을 과시하는, 그간 야당이 보여 준 전형적 패턴으로부터 벗어나겠다는 의지로도 보인다.


진통을 거듭해 왔던 우리 사회의 진보 정당들이 사회민주주의 정당으로 수렴되길 바라고, 민주당은 진보적 자유주의의 넓은 길을 개척하면서 이들과 병행 발전하길 바라 왔던 나로서는, 이 책에 대한 느낌이 좋다.

 


셋째, 이른바 ‘반MB’, ‘반박근혜’와 같이 상대를 공격하면서 정작 자신은 공허해지는 진보의 길이 아니라, 보수 정부보다 더 유능하고 실질적 성과를 낼 수 있는 진보의 길을 말하고, 그래서 실력의 중요성을 강조한다는 점이다.


오늘날 한국 정치의 최대 문제는 상대를 정형화하고 상호 비난을 반복적으로 재생산하는 일이 정치를 지배하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그렇게 되면, 남는 것은 목소리 큰 다수의 횡포뿐이다.


여권이든 야권이든, 혹은 보수도 진보도 더 강한 주장을 소리 높여 외치는 세력들에 의해 지배되는 지금의 정치에서 최대 피해자는, 정치의 도움이 절실한 서민이고 중산층이다.


건설적인 대안을 찾고자 하는 경쟁은 실력을 필요로 한다. 누가 더 유능한 정책의 공급자일 수 있는지를 두고 다퉈야 하기 때문이다. 목소리를 더 크게 하기 위해 상대를 더 고통스럽게 만들 비난의 소재를 찾느라 서로가 갖고 있는 열정의 대부분을 쏟아붓는 일로 일관하게 되면, 정치는 황폐화되기 쉽다.


그런 정치 환경에서 누가, 오랜 기간 대안을 준비하고 정책 수단에 대해 철저하게 검토할 것이며, 예산과 기구에 대한 현장 점검의 중요성을 생각할 수 있겠는가.


그래서 정권 교체가 최선이 아니라 정권을 교체해서 일을 잘할 정부가 되는 게 최선이고, ‘하늘이 무너져도 정권을 바꿔야 한다.’가 아니라 하늘이 무너져도 국민을 생각하고 민생을 챙겨야 하며, 그러기 위해서는 유능해야 하고 구체적이어야 한다는 이 책의 주장은 특별하다. 제대로 된 진보라면 이래야 한다고 나는 믿는다.


2

저자가 집권 정부와 집권당의 잘못을 말하기보다,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를 발전시키고 국민들의 삶의 조건을 향상시키기 위해 어떤 국가적 비전과 정책적 대안이 요구되는가를 먼저 묻는 것은 매우 인상적이다.


이는 정권 교체의 당위성을 역설하면서 이를 정당화하기 위해 과도하게 이념적이고 추상적인 정책 비전과 정치 담론을 제시하는 오늘의 지배적인 정치적 분위기와는 사뭇 달라서 이질적인 느낌마저 든다.


냉정하게 말하면 정권 교체에 대한 관심은, 정치인들에게 더 클 수밖에 없을 것이다. 선거 경쟁에서의 승리는 그들에게 권력과 공직을 전리품으로 안겨 주기 때문이다. 그만큼 정권 교체가 가져오는 이해관계는 훨씬 더 직접적이다.


그러나 시민의 관점에서 볼 때 누가 집권하느냐 하는 문제는, 흥미진진한 관전 포인트이고 그래서 극적인 관심을 갖게 할 수는 있어도, 자신들의 직접적인 관심사일 수는 없다. 어떤 정당이 집권하든 어차피 그 전리품을 배분받을 기회란 없기 때문이다.


보통의 시민들이 갖는 직접적인 관심사는 권력의 교체가 그들의 사회경제적 삶의 조건에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인지, 그것이 그들의 생활에 얼마나 이익 내지는 불이익을 가져올 것인지 하는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정치는 권력을 얻기 위해 자신의 행위를 정당화하는 지도자와, 그 지도자를 따르고 지지하는 대중들 간의 관계에서 발생한다. 일찍이 막스 베버는 넓게는 정치, 좁게는 민주주의에 있어 지도자-대중 관계가 그 중심이 되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일이고, 그렇기 때문에 데마고그적 현상을 민주주의의 본질적 요소라고 지적했다.


얼마 전 누군가로부터 정치인 손학규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느냐라는 질문을 받았을 때, 필자는 그에 대한 여러 특징을 말하면서, 그는 데마고그적 성격이 극히 적은 정치가라고 말했던 기억이 난다. 이 책을 읽으면서 그때 그 말이 결코 틀린 것이 아니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는 이 책을 통해 누구보다도 정치인, 특히 정치 지도자들의 결정이 사회적으로 얼마나 큰 긍정적 혹은 부정적 결과를 가져오느냐 하는 문제에 대해 예리한 책임 의식을 보여 준다.


현대 대의제 민주주의가 해결해야 할 가장 큰 문제는 선거를 통해 대표를 선출하는 차원에 있는 것이 아니라, 선출된 대표가 그를 선출한 투표자들에게 책임질 수 있도록 어떻게 구속할 수 있느냐 하는 데 있다. 짧지 않은 민주정치의 경험을 통해 우리는 선거 때마다 예외 없이 높은 기대 속에서 새로운 정부를 선출했고 그 뒤 그 정부의 수행 능력과 정책 내용에 대해 실망해야 했다.

그런 경험을 통해 우리는, 특정의 지도자와 정당이 무엇을 말하는가 하는 것 못지않게, 그들의 공약이 얼마나 현실성을 갖고 있으며 이를 실현해 낼 수 있는 리더십은 어떠한가 하는 데 점점 더 많은 관심을 갖게 된다. 그것은 데마고그와 진정한 지도자를 가려낼 수 있는 판별 능력의 향상을 의미한다.


3

손학규의 이념과 대안적 정책 비전, 그 틀 안에 있는 구체적인 정책 내용을 집약하는 화두랄까, 중심 담론은 이 책의 부제가 말하듯이 ‘민생경제’이다. 그런데 여기에서 주목하게 되는 것은 그의 민생경제론이 대선 경쟁이라는 정치적 필요에서 급조된 아이디어가 아니라, 긴 시간 동안 우리 현실과 자신을 돌아보고 고민하고 성찰한 결과로 형성되었다는 사실이다.


이 점에서 2000년 출간한 그의 저서 '진보적 자유주의의 길' 은 중요한 의미를 갖는 출발점으로 보인다. 그때로부터 이 책 '저녁이 있는 삶: 손학규의 민생경제론'에 이르기까지 12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최근 학계와 정치 공론장에서 자유주의가 한국 민주주의와 시민사회의 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 이념적 자원일 수 있는가, 또는 진보 및 진보적 정당이 이를 적극적으로 수용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를 둘러싸고 활발한 논의가 전개되고 있다. 손학규의 ‘진보적 자유주의’는 이런 논의에 물꼬를 트는 데 기여했던 개척적인 작업의 하나로 평가될 수 있을 것이다.


그때 그가 제시했던 진보적 자유주의는 1980년대 이래 자본주의의 중심적인 운영 원리로 등장한 신자유주의적 시장 자율성과 민주주의와 복지라는 가치를 결합하고자 했던 이념적 틀이었다. 이런 이념의 정치적 표현은 영국 노동당의 ‘제3의 길’, 독일 사민당의 ‘신중도’, 또는 미국 클린턴 정부 때의 ‘뉴민주당 플랜’에서 발견할 수 있다. 당시 그는 이 실험들이 한국의 민주 정부가 채택할 수 있는 경제 운용 모델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오늘의 시점에서 그의 생각에 상당한 변화가 있음을 보게 된다.


오늘날 신자유주의적 경제 운용과 성장 위주의 정책이 그 한계를 드러내면서 가져온 결과는,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엄혹하고 파괴적이다. 그동안 모든 사회적 비용을 감수하면서도 국가의 전면적인 지원하에 경제 발전의 견인차 역할을 했던 대기업의 성장은, 더 이상 고용 확대와 분배의 형평을 동반하지 않게 되었다.


세계가 부러워하는 눈부신 번영과 엄청난 불평등이 공존하는 오늘의 한국 사회는 신자유주의적 성장 지상주의 정책이 가져온 필연적인 결과라 하겠다. 이제 경제적 불평등과 사회적 양극화는 관용할 수 있는 한계를 위협하게 되었다.


중산층의 경제적 불안정, 사회 저변을 차지하고 있는 소외 계층의 확대와 그들의 절박한 사회경제적 삶의 조건, 그로 인한 사회 통합의 해체, 이를 표출하는 여러 형태의 징후들, 이 모든 것은 기존의 경제 운용과 성장 모델이 한계에 이르렀음을 분명하게 드러내는 현상이 아닐 수 없다.


이 책에서 “민생의 바다로 뛰어들겠다.”라는 저자의 말은, 정치가 감당해야 할 사회계층의 범위가 그만큼 넓어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 말은 또한 오랫동안 중산층과 서민의 정당임을 자임해 왔던 민주당이 그간 무엇을 하지 못했고,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할지를 분명히 말해 주는 것으로도 들린다.


기존의 경제 운용과 성장 모델의 패러다임이 변해야 한다면, 그 대안적인 모델은 어디에서 찾아야 할 것인가? 그 문제에 대한 해답을 얻기 위해 최근 저자는 유럽 복지국가들로 정책 여행을 떠났다. 그 과정에서 그는 민생경제론의 체계를 다듬고 보강하는 경험을 한 것으로 보인다.


이 책에서 그는 진보적 자유주의의 연장선에서 경제민주화와, 보편적 복지를 구체화할 수 있는 대안적 경제 운용 모델과 사회정책의 틀을 심화시키고 있다. 요컨대 그것은 유럽 복지국가 모델의 발견이라 할 수 있다. 앞서도 지적했지만, 이는 한국의 현대 정치사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그간 우리 사회는 절대적인 헤게모니를 가졌던 신자유주의적 독트린과 그에 기초한 미국 모델로부터의 일탈을 생각하기 어려웠다. 유럽형 자본주의 운용 모델은 경제 운용 독트린의 변화뿐만 아니라, 이를 뒷받침하는 정치와 정당 모델의 변화를 암묵적으로 포괄하는 것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특정의 경제 운용과 성장 정책은 그것을 뒷받침하는 정치와 정당 체제라는 기반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1998년 집권한 김대중 정부는 좋은 비교의 사례라 할 수 있다. 그때 내걸었던 ‘민주적 시장경제’ 또는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병행 발전’이라는 담론은 그 내용이 구체화되지는 않았다 하더라도, 최소한 권위주의적 국가 주도의 성장 모델에 대한 부정의 의미를 담는 것이었다. 그만큼 강렬한 인상을 주었다. 그러나 외환 위기 속에서 그 아이디어는 더 이상 발전하지 못했고, 결국 일시적인 슬로건이 되고 말았다.


손학규가 제시하는 진보적 자유주의와 이를 현실 속에서 실현할 모델에 대해서는 약간의 설명이 필요할 것 같다. 왜냐하면 기존의 지배적인 경제 운용의 이념과 독트린에 대해 누군가 대안을 말할 때는 언제나 도식적 이해 방식이 뒤따르기 마련인지라, 오해될 수 있는 소지가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의 저자가 유럽의 길을 말할 때, 그것이 곧바로 제2차 세계대전 이후부터 1970년대 후반까지 그 전성기를 구가했던 사회민주주의 내지는 그에 기초한 유럽적 복지 체제를 뜻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 강조될 필요가 있다. 사실상 신자유주의는 케인스주의에 기초한 유럽적 복지국가 체제가 제로 성장, 실업률 증가, 경직적 노동시장과 같은 문제들을 드러내기 시작하면서, 이를 대체한 새로운 경제 독트린이었기 때문이다.


애초 신자유주의의 등장은 시장 효율성, 시장 자유화, 노동 유연성, 공급 측면의 강조, 금융의 세계화를 통해 성장과 고용 증대를 도모하고자 했던 노력의 결과였다. 그리고 그때의 ‘제3의 길’은 원래의 복지국가 체제에 시장의 원리를 접목하는 이념적, 거시 정책적 틀이자 담론이었다.


2007년 이래 미국의 월가 금융 위기로부터 시작해서 오늘날 유럽연합의 범위까지 확산된 세계적 금융 위기 및 경제 위기는 신자유주의의 패러다임이 효능을 상실했음을 보여 주는 결정적인 징표가 아닐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과 같은 세계적 변화의 환경하에서 손학규가 유럽의 길을 말하는 것은 다시 과거와 같은 사회민주주의를 복원하자는 뜻은 아니다.


오늘날 세계적 수준에서 신자유주의적 경제체제가 가져온 결과는 실로 엄혹하다. 그것이 갖는 가장 치명적인 결함은 “1퍼센트 대 99퍼센트의 사회”, 그 대표적인 사회인 미국에서 보듯 “0.01퍼센트와 나머지”라는 말이 과장이 아닌 극단적인 빈부 격차를 창출한 데 있고, 그 결과 사회 통합 자체가 유지될 수 없는 한계상황에 도달했다는 점에 있다.


그 위에 지식 정보화 산업, 과학기술 발전, 그에 따른 노동생산성의 증가를 한편으로 하고, 다른 한편에서는 중국의 산업화에 의한 값싼 노동력의 무제한적 공급으로 인해 선진 산업국가들에서 산업구조 및 노동시장의 구조 변화가 초래되면서 고용 자체를 확대시키지 못하고 있다. 더 이상 성장과 고용을 병행할 수 없게 된 것이다.


이 현상의 최대 피해자는 신규 노동시장으로 진입하는 젊은 세대 노동자들이다. 세대 갈등은 흡사 계급 갈등과 유사한 것이 되었고, 그로 인해 젊은 세대가 독자적인 계급으로까지 운위되기에 이르렀다. 이런 현상은 인구의 노령화 현상으로 더 첨예화되면서 신자유주의의 모델 국가인 미국만이 아니라 유럽 복지국가들을 강타했다. 유럽은 유럽대로 복지 비용을 감당해야 할 재정 부담의 증가, 재정 적자, 노동시장 경직화 등의 문제를 해결해야 할 처지가 되었다.

따라서 오늘날 유럽의 길을 말할 때 그것은 시장 대 국가, 성장 대 분배, 시장 자본주의 대 복지 자본주의와 같은 이분법을 통해 선택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새로운 모델이 될 수 있는 것은 여전히 중간적 길이라 할 수 있다. 이 점에서 과거의 ‘제3의 길’과 그 내용은 비록 다르지만, 적어도 그 정신에 있어서는 동일하다.


이 책에서 손학규가 말하는 진보적 자유주의, 유럽의 길을 필자 나름대로 이해한다면 이렇게 정리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첫째, 신자유주의 독트린이 강조했던 것과 같이 시장의 역할, 그 효율성에 대해 긍정적으로 인정한다. 그러나 동시에 경제 운용과 시장에 대한 적극적이고도 효율적인 국가 역할의 긍정성을 강조한다. 이것은 고전적인 소극적 자유를 중심으로 한 국가 역할이 아니라, 적극적 자유를 구현하는 국가의 역할을 말하는 현대의 진보적 자유주의의 이념이기도 하다.


둘째, 시장의 구조는 규제되지 않은 자율적 시장이기보다, 유럽의 사회적으로 규제된, 독일에서 ‘사회적 시장경제’Soziale Marktwirtschaft라고 부르는 데서 그 모델을 발견할 수 있다. 이런 시장 질서에서는 주요 경제 행위자들, 즉 대기업?중산층?노동자와 같이 중심적인 경제 집단들의 이해관계가 균형적으로 고려된다.


즉 그것은 한국의 생산 체제에 있어 현재 대기업의 하청 계열화로 인해 위계적 관계에 있는 중소기업의 자율성이 확대되는 한편, 노사 관계의 민주화가 실현되어 기업과 노동자들이 그 틀 안에서 타협해 공동의 이익을 발견할 수 있는 시장 질서를 말한다.
독일이 오늘날 전 세계적인 경제 위기에도 불구하고, 높은 산업 성장, 고용 안정을 이룰 수 있었던 토대는, 슈뢰더 사민당 정부의 노동 개혁, 메르켈 기민당 정부의 재정 안정화 정책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다. 경제성장과 안정의 모델 국가가 될 수 있었던 것은, 기업과 노동자들이 협상해서 노조가 임금 인상, 실업보험을 부분적으로 포기하고, 비정규직 제도의 인정을 통해 노동시장 유연화를 받아들이고, 고용 안정을 얻은 윈-윈 정책의 결과였다.


셋째, 한국의 노동시장에 있어서는, 정규직과 비정규직으로 양극화되어 있는 제도가 개선될 필요가 있다. 이 말은 비정규직을 철폐해야 한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노동시장의 유연성을 유지하되, 임금수준과 고용조건의 차이를 좁힐 수 있는 조처들이 요구된다는 것을 뜻한다.


넷째, 복지는 어떻게 정의될 수 있고, 그 내용은 무엇인가? 우리는 어떤 사회정책과 복지를 선택해야 하나? 만약 스칸디나비아형 보편적 복지를 단번에 달성하는 것을 지향한다면, 그것은 이상일 수 있을지는 몰라도 현실적이지는 않다.


한국의 복지는 차라리 사회적 안전망의 강화를 지향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역동적인 시장을 통한 경제성장을 기초로 하되, 시장 경쟁에서의 열패자들을 보호할 안전망을 강화한다는 의미에서 그러하다.


이를 위해서는 기존의 제도인 ‘최저생계비’ 지원을 확대하는 것이 무엇보다 급선무다. 생계비 보장은 성장 결과ex post를 재분배해서 수요를 창출하는 케인스주의적이고 전통적인 복지국가 영역에 속한다. 그와 병행해서 신자유주의 이후의 복지국가는 시장 경쟁으로 들어가기 이전에ex ante, 직업교육 및 훈련 제도를 대폭 강화하는 것을 포함한 교육개혁에 큰 역점을 두는 것이 바람직하다.


손학규의 진보적 자유주의가 20세기 진보적 자유주의를 대표하는 철학자 존 롤스의 “정의론”의 핵심 내용, 즉 사회 다수 시민의 생활 조건이 낮아지는 경우라 하더라도 최하층의 사회경제적 조건이 향상될 수 있는 소득분배 구조가 돼야 한다는 주장에 얼마나 가까울지는 분명치 않다.


그러나 그는 적어도 시민 다수는 중간층에 무게중심을 두는 분배 구조를 지지할 것이라는 점을 확신하고, 그래야 한다고 생각한다. 성장의 총량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개개인의 소득 증가가 더 이상적이고 큰 가치를 갖는다고 믿는 것만큼은 확실하다. 그는 한국 사회는 복지국가가 될 만큼 충분히 성장했고, 그런 경제력을 갖는다고 확신한다.


손학규는 유럽 여행을 통해 유럽의 국가들이 시장 효율성과 기존의 복지국가를 어떻게 결합하고, 변화된 환경하에서 어떻게 그 틀을 유지하려 했는가 하는 문제의식을 가지고, 복지국가 이후 유럽의 고민과 실험들을 보고자 했다.


그리고 신자유주의의 충격 효과를 그 어느 나라보다도 강하게 흡인한 한국 사회에서 어떤 대안을 찾을 수 있을 것인가를 고민했다. 그리고 그 결과가 이 책으로 나타난 것이다.


4

민생경제는 무엇을 의미하나? 그것은 민주주의와 어떤 관련이 있는가.


나는 최소 정의적minimalist 민주주의 또는 절차적 민주주의를 현대 민주주의의 본질로 이해하는 관점을 갖고 있다. 달리 말해 보통선거권, 공정하고 주기적인 선거, 집회?언론?결사의 자유, 정당 간 경쟁, 선출된 대표와 정부의 책임성과 같은 절차적 최소 요건들, 가장 간결하게 말해 1인 1표의 제도를 갖는 정치체제를 민주주의라고 이해한다. 민주주의는 본질적으로 정치적 민주주의라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민주주의는 정치적 불평등에 대해서는 강하게 반대하거나 적대적이지만, 경제적 불평등이나 빈곤에 대해서는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다. 오늘날 세계적 수준에서 볼 수 있듯이, 경제적 불평등의 확대와 정치적 민주화의 확대가 병행한다고 해서, 그것이 결코 있을 수 없는 일은 아닌 것이다.


즉 민주주의라고 해서 다 좋은 경제적 결과만 있는 것은 아니며, 민주주의가 잘못 돌아가면 나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민주주의를 정당화하는 일은 어떻게 가능한가. 우리가 발전시켜야 할 민주주의는 어떤 민주주의인가.


민주주의는 가장 평등한 정치 참여의 기회를 제공하기 때문에, 특정의 사회집단이 수의 힘을 조직함으로써 그들의 권익을 스스로 대표하고 보호할 수 있는 가능의 공간을 개방한다. 특히 수는 많으나 경제적?사회적 힘이 약한 사회경제적 약자들에게 이 사실은 중요하다.
지금 경제적 민주화가 중대한 정치 이슈이자 담론으로 등장하고 있다는 사실은, 그동안 한국의 정치적 민주화가 경제적 민주화를 가져오지 못했음을 증명한다. 다시 말해 이는 그동안 한국의 정당이 자신들의 사회경제적 기반을 제대로 갖지 못했고, 특히 누구보다도 소외된 사회경제적 약자들을 대표하지 못함으로써 그들의 의사와 요구에 대해 제대로 책임성을 갖지 못했음을 보여 주는 증거들이다.


따라서 이 책의 저자인 손학규가 민생을 돌보는 일에 헌신하겠다고 말하고, 노동자와 농어민, 영세 자영업자와 중소기업을 보살피는 역할이 정치의 본분이라고 말할 때, 그것은 경제적 민주주의의 본질적인 측면을 지적하고 있는 것이다. 이 문제에 대한 민주당의 역할과 책임을 강조한 것은 때늦은 감이 크지만, 정당한 일이다.


민생경제, 민생 문제는 삶의 현장과 직접적으로 연관된, 좀 더 구체성을 갖는 문제를 표현한다. 우리는 사회의 최상층 엘리트들이나, 안정적인 중산층의 사회경제적 조건을 말할 때 민생 문제라는 표현을 사용하지 않는다.


우리가 민생 문제라고 할 때, 그것은 자신들의 삶의 조건이 경기변동이나 정부 정책의 결과에 따라 언제라도 위협당할 수 있는 사람들의 세상을 말한다.


민생경제는 하위 중산층들의 불안정한 삶의 조건이나, 최소한의 경제생활조차 유지하기가 힘겨운 열악한 사회경제적 집단들 내지 저소득 서민층의 경제생활을 가리킨다. 경제성장과 번영의 반대편 그늘에 위치한 이들에게 시장 경쟁과 시장 효능만을 말하는 것은 설득력을 갖기 어렵다. 기존의 시장 경쟁의 열패자들인 이들에게 자율적 시장으로 돌아가라는 것은 더 이상 희망이 될 수 없다.
민생경제는 시장이 할퀴고 간 자리에 남겨진 사람들을 보호해야 할 정치의 효능, 정치인의 책임, 정부의 소명과 직접적으로 관련된 말이다. 민생 문제는 정치의 영역이고 정치인들의 책임이다. 사회경제적 약자들의 요구와 의사는 무엇보다도 정치적으로 대표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그간 우리 현실에서 이런 정치의 역할은 발견되지 않았다. 이들에게 정치와 정당, 정치인은 선거철에 일회적으로 스쳐 지나가는 존재였을 뿐이다. 보수는 말할 것도 없지만, 진보도 다르지 않았다. 서민과 민생의 세계에서 민주주의는 작동하지 않았다.
중산층과 소외된 서민 계층들의 사회 영역 사이에는 분명한 단층fault line이 존재한다. 이 영역에서 시민사회 혹은 그 영역에서 민주주의를 실천할 주체로 불리는 시민이라는 말은 매우 모호하고 추상적인 것임에 분명하다. 한국의 시민사회와 정치는 기본적으로 중산층 이상의 엘리트층을 위한 참여의 공간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말하자면 한국 민주주의는 중산층 이상의 사회계층에 기반을 두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새누리당과 민주당의 차이가 무엇인지를, 적어도 민생경제의 영역에서는 발견하기 어려웠던 것이 우리 현실이었다. 어느 정당이든 그들이 생각하고 실천했던 민생경제란, 정부가 예산을 풀어 저소득 계층에 혜택을 부여하는 차원에 있었고, 이는 온정주의적인 시혜를 넘어서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거기에는 이해 당사자들을 정치적으로 조직하고, 그들의 소리를 직접 정책 결정 과정에 투입하는 대표의 측면이 중심인 민주적 결정 방식이 누락되어 있었다.


따라서 이 책에서 기왕에 민생경제를 말하는 것이라면, 그간 자신들의 의사와 요구를 개인적으로나 집단적으로 표현할 수 없었던, 우리 사회 중하층의 ‘목소리 없는’voiceless 사람들이 정책 결정 과정에 참여해 자신들의 소리를 낼 수 있는 채널을 마련하는 문제에 더 관심을 갖기를 권하고 싶다.


과거에 이 영역을 지배했던 것은 행정 관료와 정치 엘리트, 전문가, 지식인들이 주도하는 산출 중심의 결정 방식이었다. 이제 그 패턴에서 벗어나 투입 측면에서 이해 당사자들의 참여가 넓어질 때 민생경제와 민주주의의 가치는 제대로 병행 발전될 수 있다고 나는 믿는다.


5

한 정치 지도자가 자신의 비전과 정책 대안을 실현하는 데 어떤 태도를 갖는가 하는 문제는, 그의 비전과 대안이 얼마나 올바르냐 하는 것 못지않게, 아니 그보다 더 중요하다.


자신의 목적 의지를 어떻게 실현하느냐 하는 방법론 내지 정치적 실천의 문제에 대해 막스 베버는 ‘목적 윤리’에 대응하는 ‘책임 윤리’로 개념화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자신의 책 '니코마코스 윤리학'에서 ‘사려 깊음’ 내지는 ‘균형 감각’을 ‘정치학’과 거의 동일한 의미로 사용했다. 그만큼 책임성을 갖는 것과 사려 깊음은 정치적 실천에서 핵심적인 요소이다.


나는 이 책 '저녁이 있는 삶'을 읽으면서, 책임 윤리에 대한 자각과 사려 깊음을 보여 주고 있는 것이야말로 정치인으로서 저자가 가진 큰 덕목이라고 생각한다. 이 문제는 비전이 강하고, 개혁적일 때 특히 중요하다. 왜냐하면 강한 비전과 개혁을 주장하는 것은 쉽게 급진주의로 내달을 수 있고, 그것은 이내 반대와 반발을 불러오기 때문이다.


오늘날 한국 사회의 보수와 진보의 과도한 대립은, 특히 진보의 관점에서 볼 때 자신의 목적의식이 얼마나 진보적이고 진정한 것인가를 과시하는 데 바빠서 그런지 실제로 그 진보적 목표를 실현하는 데는 큰 관심을 갖지 않는 태도로부터 연유한 바가 크다고 생각한다.

진정 세상을 크게 개혁하고자 한다면, 그들의 언어를 가능한 한 최대로 부드럽게 하고, 상대를 설득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 조금이라도 더 많이 자신의 개혁 목표를 실현할 수 있는 곳에 열성을 다 쏟아야 할 것이다.


상대방에 최대한의 상처를 입히려는 공격적인 언사, 급진적 슬로건, 강하고 배타적인 어조가 일상화된 정치 환경이란, 그 속에서는 그 어떤 중요한 것도 이루어질 수 없음을 말한다. 따라서 나는 진보적인 거대 담론, 추상화된 이념적 슬로건을 앞세우는 것으로 자신의 일을 다했다고 행동하는 것에 대해 대체로 비판적이다.


경제민주화와 민생경제의 문제는 개별적, 구체적 정책들을 포괄하는 추상화된 이념, 그리고 그에 기초한 포괄적인 정책 노선을 한편으로 하고, 가장 개별적이고 구체적인 문제를 다루는 정책 대안들을 다른 한편으로 하는, 양자 사이의 변증법적 상호 관계가 아닐 수 없다. 달리 말해 거시적 수준과 미시적 수준의 균형 없이는 이루어지기 어렵다는 말이다.


민생경제는 이 양자를 다 포괄하면서도 실천적으로는 가능(성)의 지점을 늘리고 확대해 가는 과정을 통해 이루어진다. 필자는 이것이야말로 정치인의 책임 윤리 또는 사려 깊음의 영역이라고 생각한다. 노동문제와 관련해 예를 들어 보자.


한편에는 거시적인 문제가 존재한다. 경제민주화를 위해 개혁해야 할 핵심 사안은 노동시장을 정규직과 비정규직으로 양분화하고 노동자들 사이의 차별을 정당화하는 제도적 장치들이라고 생각한다. 이 제도적 장치들을 개혁하지 않고는 고용 문제, 젊은 세대의 실업 문제, 노동자들 사이의 양극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그리고 그것은 재벌의 중소기업 하청 계열화와 밀접한 상호 관계를 갖는다. 또한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성장 정책의 변화, 재벌 대기업의 지배 구조 개선, 사회적 시장경제의 도입과 같은, 생산 체제와 시장구조에 대한 획기적인 개혁이 필요하다.


불행하게도 현재와 같은 야당의 조직적 능력으로는 짧은 시간 내에 이런 개혁을 실현하기 어렵다. 그러나 그렇다고 경제민주화, 재벌 개혁만을 외칠 수는 없고, 그것이 개혁될 때까지 아무것도 하지 않고 기다릴 수도 없다.

이런 거시적 문제의 다른 한편에는 구체적인 문제들이 존재한다. 얼마 전 나는 일용직 건설 노동자들의 현황을 조사하기 위해 성남시 복정동의 새벽 노동시장을 찾아간 적이 있다. 그들이 요구하거나 기대하는 일은 작지만 구체적이었다. 주차할 공간을 마련해 주고, 비를 피할 수 있도록 처마를 달아 주는 것부터가 시작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해야 할 일, 할 수 있는 일은 수도 없이 많았다.


무엇보다도 이해 당사자들이 참여할 수 있는 삶의 현장으로부터 확장해 갈 수 있는 정책 사안들을 찾기는 어렵지 않았다. 문제는 바로 그곳에 정당도 정치가도 민주주의도 없다는 데 있었다. 따라서 거시적인 제도나 조건의 변화가 없이는 안 된다고 말하는 것은, 적어도 내가 보기에는 무책임한 태도가 아닐 수 없다.


다시 말하거니와 민생 문제는 거시적인 것과 미시적인 것 양자 사이의 넓은 범위 안에 위치한다. 그리고 그것이 어떻게 얼마나 실현되느냐 하는 문제는, 두 차원을 결합할 수 있는 정당의 실력 내지 정치인들의 책임 윤리와 밀접하게 연관돼 있다. 이 책 ??저녁이 있는 삶??이 인상적인 것은, 기존의 경제 운영 및 성장 정책 패러다임이 변화되어야 함을 말하면서, 민심의 바다와 민생에 길이 있다며 구체적인 실천을 강조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 책의 저자 손학규의 바람대로 민생경제가 살아났으면 좋겠다. 그가 제시한 대로 노동의 가치가 존중되고, 활력 있는 시장경제와 더불어 공동체의 가치도 살아났으면 좋겠다.


그가 약속한 대로 거시적 목표나 구호 제시만으로 그치지 않고 이해 당사자들의 삶의 공간에서 실천하고자 하는 책임의 윤리가 한국 정치의 기본이 되었으면 좋겠다.

갈등하는 요구와 차이를 인정하고, 이를 조정하고 통합하고자 노력하는 지혜와 사려 깊음으로 구체적인 성과를 만들어 가고 가능성에 대한 희망이 늘어나는 한국 사회가 되면 좋겠다.


그렇게 할 수 있다면, 그가 누구든 운명의 여신 포르투나Fortuna가 함께하는 정치가, 아니 스스로 운명을 개척하는 실천적 역량과 의지를 가진 정치가로 성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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