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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이 책을 썼나 - 손학규

작성자 : 관리자   |   등록일 : 2012-07-01   |   조회수 : 2292

 『저녁이 있는 삶』 서문

 

 

나는 왜 이 책을 썼나

 



“저녁이 있는 삶을 돌려 드리겠다.
사람이 중심이 되는 경제, 사람이 중심이 되는 복지를 말하는 거다.
산업화다 민주화다 하면서 모두가 힘차게 달려왔는데,
그 혜택을 누릴 수 없다면 누가 다시 뛸 수 있겠는가.
단순히 노동시간 단축만을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함께 잘살고, 함께 행복할 수 없는 길이라면
일을 줄인다고 달라지는 것은 없을 것이다.
그것은 올바른 선택이 될 수 없다.
저녁이 있는 삶이 상징하는 것은 결국 민생경제다.
민생경제를 한다고 모든 것이 해결되는 것은 아니지만,
일단 우리는 거기서 출발한다.”


__출마 선언 직후 한 인터뷰에서

 

 

내가 말하는 ‘저녁이 있는 삶’은 단순히 저녁 시간을 즐기는 여가에 대해 말하는 것이 아니다.


저녁이 있는 삶은 우리 사회에 만연한 이분법적 구도를 반대하는 가치다. 돈을 벌기 위해서는 가족과 함께 저녁을 먹고 대화하는 것을 포기해야 한다는 식의 이분법, 내가 잘살기 위해선 누군가는 못살아야 한다는 이분법, 내가 옳기 위해서 누군가는 반드시 틀려야 한다는 이분법……. 이 모든 것에 반대하는 가치가 바로 저녁이 있는 삶이다.

직업을 구하는 것, 돈을 버는 것, 개인으로서 가족 구성원으로서의 기본적인 행복을 누리는 것, 이 모든 것이 함께 가야 한다는 새로운 가치를 ‘저녁이 있는 삶’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것이다.


저녁이 있는 삶이란 상생의 가치다. 노력한 만큼 얻을 수 있는 삶, 절망하는 대신 희망을 가질 수 있는 삶, 미워하는 대신 포용하는 삶, 서로 돕고 함께 잘사는 삶의 가치다. 바로 내가 꿈꾸는 새로운 대한민국의 길이다.


아버지와 아들이 함께할 수 있는 저녁

언젠가 아내가 텔레비전 프로그램에서 본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평소에 서로 대화가 없는 나이든 아버지와 장성한 아들이 함께 출연해서 상담을 통해 대화의 고리를 푸는 다큐멘터리 같은 거였나 보다. 아내의 말에 따르면 아버지와 아들은 서로 감정의 골이 깊었고 가족임에도 불구하고 대화라는 것을 해본 적이 없었단다.


아버지는 평생을 뼈 빠지게 일했는데 가족에게 대우도 못 받는 자신의 처지가 안쓰럽다고 했단다. 아들은 평생 가족에게 따뜻한 말 한마디, 애정 어린 관심을 보여 주지 않고 오로지 밖으로만 돈 아버지가 밉다고 했다. 둘은 혈연관계이지만 평생 대화해 본 적이 없었다.
주변을 살펴보더라도 아버지와 사이가 좋지 않거나 함께 있는 것을 어색해하는 아들들이 많다. 특히 산업화 시대에 젊음을 바쳐 이제 60~70대에 접어든 아버지들과 이제 30~40대가 된 아들들이 그렇다.


지금의 젊은 세대들은 어렸을 때 가족과 많은 대화를 나누지 못했다. 그 당시 산업의 역군이었던 아버지들은 가정에서 보내는 시간보다 바깥에서 보내는 시간이 더 많았기 때문이다. 부부 관계는 수평적이지 못했고 가정 안에서의 대화는 바깥일보다 등한시됐다. 아들들은 그런 아버지를 이해하지 못했다. 사춘기를 겪으면서 어머니에 대해 애잔한 마음이 생기고 아버지와는 감정적으로 소원해진 채로 성장했다.


나는 이것이 근대화가 남긴 병이라고 생각한다. 오로지 잘살아 보자고 외치면서 죽도록 일만 하고 개인과 가족은 없는 사회, 겉으로 보이는 성장만 중요시해 온 사회의 결과인 것이다.


우리에게는 가족과 대화하도록 허용된 시간이 없었다. 그런 가치는 “돈을 벌어야 한다, 부자가 되어야 한다.”라는 논리에 밀렸다. 이제 우리에게는 저녁이 필요하다.

열심히 일해 돈을 벌고, 일이 끝나면 가족들과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삶. 그것이 저녁이 있는 아버지의 삶이다.


아내와 어머니에게도 저녁이 있는 삶

예전에는 쉽게 듣지 못했던 단어가 심심찮게 뉴스에 등장한다. 산후 우울증, 육아 우울증이라는 단어다. 내가 젊었을 때는 여성이 아이를 낳고 기르는 게 당연했다. 물론 출산과 육아의 과정은 힘들었겠지만 남자가 밖에 나가 일을 하는 게 당연했듯 여성에게도 의당 당연한 일이었다. 우리나라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도 고대 모계사회 이후 근대에 들어서기 전까지 남녀의 성 역할은 이렇게 고정되어 있었다.


우리 어머니는 자식을 열이나 낳으셨다. 어머니는 그 당시에도 일하는 여성이었다. 아버지와 같이 어머니도 초등학교 교사였다. 그러나 아이를 낳으면서 학교를 그만두고 가정을 지키는 전형적인 주부가 되었다.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신 후에는 농사도 짓고 산에 가서 나무도 하고 장사도 하면서 아이들을 키우셨다.


초등학교 때 한번은 내가 도시락을 두고 가 어머니가 학교에 도시락을 들고 찾아온 적이 있었다. 그때 같은 반 친구가 “학규야, 너희 할머니 오셨다.”라고 했던 게 기억에 남는다. 열 남매 중의 막내인 나를 어머니가 마흔넷에 낳으셨으니까 그렇기도 했겠지만 아이들 키우랴, 남편 없이 혼자 가족들 벌어먹이랴 오죽 고생을 하셨으면 나이보다 훨씬 들어 보이셨을까. 그렇게 희생하고 가족을 위해 헌신하는 것이 우리 시대 어머니들의 모습이었다.


어머니도 일을 하셨지만 약국을 했던 아내도 ‘워킹 우먼’이었다. 결혼하고 나서 나는 민주화 운동이다, 빈민 운동이다 하며 돈 벌 생각은 하지 않고 밖으로 나돌며 노상 경찰서다, 정보부다 끌려다니고, 도망 다니고……. 집안 살림은 온통 아내의 몫이었다. 지금은 고인이 된 친구 김근태 의장이 내가 도망 다닐 때 자주 찾아와 약국의 덧문을 닫아 준 것도 그때였다.


요즘 여성들은 예전의 희생하는 어머니상과는 다르다. “‘여성도’ 일한다.”라는 표현은 이미 낡았다. 사회 진출도 많아졌고 자아실현 욕구도 크다. 남녀를 구분하지 않고 모두가 사회 구성원으로서 일하고 꿈을 펼쳐 가려고 한다.


그렇게 직업을 갖고 스스로의 힘으로 돈을 벌었던 여자들이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는다. 자신에게 집중됐던 삶이 갑자기 한 생명을 잉태하고 온전히 책임져야 하는 역할로 바뀌게 되는 것이다.


아이를 키우는 것은 정말 힘든 일이다. 남편은 나가서 돈을 벌고 아내가 직장을 그만두고 집에서 아이를 보는 경우가 많다. 일을 하고 싶어도 아이를 맡길 만한 곳이 없기 때문이다. 어린이집에 맡겼다가 아이들이 잘못되었다는 뉴스에 엄마들은 불안하기만 하다. 친정 엄마나 시어머니에게 맡기는 방법도 있지만 멀리 살거나 부모님이 연로하신 경우에는 이것도 힘들다.


결국 자신의 힘으로 혼자 아이 키우는 것에 헌신해야 하는 엄마들은 고달프다. 그래서 산후 우울증, 육아 우울증이라는 말이 생기고 무서운 병처럼 퍼져 가고 있는 것이다.


운 좋게 육아휴직이 보장되는 직장에 다녀 가까스로 첫째를 낳고 다시 일을 하려고 한다 치자. 둘째를 낳는 것은 쉽게 엄두가 나지 않는다. 완전히 일을 포기하고 아이가 클 때까지 집에만 머무르겠다고 결심하지 않고서는 둘째를 낳을 생각은 하기 힘들다. 첫째를 낳고 바로 일을 그만둔 경우에도 아기 아빠가 혼자 벌어 오는 돈이 빠듯해 둘째 출산을 망설이는 경우가 많다. 이래저래 출산율은 낮아진다.


여성이 편안해야 가정이 편안하다. 엄마가 웃어야 아기도 웃는다. 아내가 응원해 줘야 남편도 힘을 내서 일을 더 잘한다. 여성이 행복해야 사회가 행복해진다.


아이들에게도 미래의 꿈이 있는 삶

얼마 전에 작은딸이 들려준 얘기다. ‘노는 학원’이 있다는 거다. 요즘 아이들이 학원을 많이 다녀 놀 시간도, 뛰어놀 공간도 없어 놀이를 가르쳐 주는 학원이 생겼다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교육열이 무척 높다. 예로부터 우리 부모들은 자식을 위해서라면 뭐든지 해주려고 했다. ‘가난해도 내 자식만큼은…….’이라는 부모들의 노력이 있었기에 우리나라가 이만큼 인재를 키울 수 있었으며 이런 인재 양성에 힘입어 경제 발전이 가능했다.


하지만 아이들은 힘들다. 요즘 아이들은 옹알이를 하면서부터 글자를 배우고 동시에 영어를 익힌다. 예전에 흥미롭게 읽은 글이 기억난다. 어떤 엄마가 첫아이에게는 글자를 빨리 가르쳐 주고, 둘째는 자신이 원할 때까지 가르쳐 주지 않았다고 한다. 어떤 것이 아이의 창의력에 더 도움이 됐을까? 글을 배우지 않은 둘째는 버스가 지나가면 색깔과 모양을 보며 감상을 얘기했다. 하지만 글을 아는 첫째는 ‘○○운수’라고 읽어 버리는 게 끝이었다고 한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것이 아이들에게는 좋지 않을 수도 있는 것이다.


아이들은 정말 순수하다. 자신의 눈으로 세상을 본다. 어린 시절에 느끼고 배운 것을 토대로 정서가 함양되고 자아가 생성된다. 그런데 우리는 무조건 아이의 머리를 지식으로 채우려 한다. 교육에 대한 열망은, 엄청난 규모의 사교육 시장과 직결되어 있다. 심지어 아이의 두뇌나 감성을 발전시켜야 한다는 프로그램들조차 상업적인 논리로 만들어져 있다.


요즘 아이들은 놀이터에서 흙장난을 하는 대신 학원에 다니느라 바쁘다. 학교가 끝나면 학원에 가야 하고 따라서 아이들의 친구는 보통 ‘학원 친구’라고 한다. 학원에 가지 않으면 친구조차 못 만드는 것이다. 그것을 파고든 게 ‘놀이 학원’이다.


그렇다면 돈이 없는 아이들은 어떨까? 학원에 갈 돈도 없다. 학교에선 위축이 되고 아이들과 잘 어울리지 못할 것이다. 어린 시절부터, 학교에서부터 차이를 느끼고 격차를 느낀 아이가 과연 희망을 꿈꿀 수 있을까?


공부만 강요하고 어려서부터 학원에 다닌 아이들은 심신이 허약하다. 부모에 의존하다 보니 자립성은 떨어지고, 공부와 바쁜 일정에 지치다 보니 몸은 허약해진다.


어려서부터 아이들에게 공부를 시키고 학원과 사교육의 장으로 몰아넣는 엄마들에게 왜 그러냐고 물어보면 돌아오는 대답은 한결같다. “남들이 다 하기 때문에 하지 않으면 뒤처질 것 같아서.”라는 것이다. 그렇게 우리의 아이들은 어려서부터 경쟁의 체제로 들어선다.


이래저래 아이들은 행복하지 않다. 있는 집 아이들은 학원과 과외수업에 치여 불행하고, 없는 집 아이들은 학원에 못 가서 불행하다. 엄마들은 학원비 대려고 잔업이다 알바다 뼈 빠지게 일하고 심하면 가정 파탄까지 다다른다. 엄마가 일하러 가고 없는 빈집에 아이들은 정을 못 붙이고 밖으로 돈다.


학원에 다니면서 간신히 성적을 올려 대학에 진학한들 창의력은 없고 학업 능력은 떨어져 대학 생활도 불행해진다. 더구나 대학에 들어가자마자 부딪히는 취업난에 학생들은 캠퍼스의 낭만은커녕 이내 ‘스펙’의 노예가 된다. 우리 대한민국이 이렇게 살 수는 없다. 달라져야 한다.


정권 교체해서 무엇을 할 것인가

우리는 2012년 12월 19일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정권 교체를 목표로 하고 있다. 민주당이 집권할 수 있는가 없는가는 물론 중요하다. 민주당은 수권 정당으로서의 면모를 보여 줘야 한다. 그것이 시대의 요구다.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민주당이 다시 집권한다면 무엇을 할 수 있는가이다.


과연 민주당은 국민을 ‘잘’살게 해줄 수 있는가? 민주당은 아버지와 가족에게 저녁이 있는 삶을 제공할 수 있는가? 그래서 아버지와 아들이 편하게 대화를 나누는 가정을 선사할 수 있을까? 젊은 주부들이 자아를 실현하면서 행복한 마음으로 아이를 갖고 키울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 줄 수 있는가?


아이들이 학교 가는 것을 행복해하고 청년들은 자유롭게 꿈을 갖고 마음껏 미래를 설계하도록 할 수 있을까? 과연 민주당은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을 행복하게 해줄 수 있는가?


당보다 나라가 우선이고, 국민이 우선이라는 게 내 원칙이다. 나는 어느 자리에서나 정권 교체를 최종 목표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고 말해 왔다. “하늘이 무너져도 정권 교체를 해야 한다.”라는 얘기도 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하늘이 무너져도 해야 될 것은 국민의 삶을 지키는 것이기 때문이다. 함께 잘사는 나라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정권 교체는 그것을 위한 수단일 뿐이다.

그렇다면 우리 민주당은 어떤 정부가 될 것인가. 어떤 경제정책, 어떤 사회정책을 할 것이며, 이를 통해 어떤 사회를 만들겠다고 말할 것인가. 내가 이 책을 낸 이유는 바로 이런 문제의식 때문이다.


실천할 수 있는 비전이 중요하다

정치가들의 책은 주로 자신의 정치적 비전을 다룬다. 정치가의 역할이 비전을 제시하는 것이니 자연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그것이 목표나 가치를 선언하는 것으로 충분하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정치가는 시민에 의해 선출된 시민의 대표다. 정치가의 비전이 가치가 있으려면, 일반 시민의 눈높이에서 제기된, 우리 사회의 문제를 담아야 한다.


정치적 비전도 중요하지만 이를 실천할 수 있는 구체적 내용을 발전시키는 것은 더 중요하다. 많은 정치인이 지향과 목표를 여러 슬로건으로 표현해 왔는데, 사실 우리가 지향해야 할 목표 가치는 이미 분명하게 존재한다. 우리 정치가 지향해야 할 방향은 민주주의를 좀 더 강화하고, 경제적 불평등과 양극화를 줄이며, 한반도의 평화를 유지하고, 보편적인 복지를 확대하는 일이다.


큰 방향에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이미 나와 있다. 문제는 그것을 실현하려면 어떤 노력들이 필요하고 어떤 의지를 새겨야 하는지를 말하는 것이다. 나는 그 일을 하려 하고, 지금까지 이 문제에 집중해 왔다. 이 책에서만큼은 말의 성찬이 아니라 실제로 우리 사회가 필요로 하는 정책을 이끌어 갈 수 있는 의지와 방법을 보여 주고 싶었다.


진보적 자유주의의 새로운 길

지난 10년간, 세계도 우리나라도 크게 변했다. 나도 변했다. 나는 2000년에 '진보적 자유주의의 길' 이라는 책을 썼다. 당시 나의 문제의식은 세계화의 시대에 민주?진보 세력이 어떻게 적응하고 글로벌 경쟁에서 이겨 낼 것인가 하는 것이었다.


그것은 당시 미국과 유럽을 풍미했던 ‘제3의 길’의 한국적 모색이기도 했다. 영국의 토니 블레어가 대처리즘을 극복하기 위해 노동당의 노선을 ‘제3의 길’에서 찾았고, 미국의 빌 클린턴이 레이거니즘을 이기기 위해 ‘뉴민주당 플랜’을 추구한 것과 같은 맥락이었다.


당시 나는 미국에서 8개월여를 머무르는 동안 클린턴 정부가 진보 정책을 추진하면서 동시에 경제적 번영을 이룩하는 과정을 인상 깊게 지켜보았다. 우리도 그 물적 기반을 확보하면서 진보적 가치를 실현할 수 있는 길을 찾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 생각을 ‘진보적 자유주의’라는 개념으로 정리해 보았던 것이다. 이는 민주주의와 복지라고 하는 진보적 가치를 실현하되, 자유주의 시장경제의 경쟁 체제를 적극 도입해야 한다는 이념 노선이었다.


그러나 그 후 10년도 더 훌쩍 지난 지금, 나는 ‘진보적 자유주의’의 내용 면에서 새로운 길을 모색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지난 10년 동안 세상도 많이 바뀌고 세상 사람들의 생각도 바뀌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나의 생각이 많이 바뀌었다.


민생에서 길을 찾다

2008년 7월부터 2010년 8월까지 2년간 나는, 현실 정치에서 한발 물러나 춘천에 머물면서 그간 내가 살아온 길과 정치 여정, 그리고 대한민국의 현재와 미래에 대해 많은 생각을 했다.


2006년 6월 30일, 경기도지사를 사임하는 날로부터 시작했던, 1백 일간의 ‘민심 대장정’에서 그러했듯이 궁극의 해답을 민심의 바다에서 찾으려고 노력했다.


정치에 대한 나의 성찰은 국민들의 고단한 삶에서부터 시작되었다. 가장 마음이 아팠던 것은, 어느덧 우리 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승자 독식의 경제, 그리고 그와 함께 나타난 양극화 현상이었다.


국민의 삶은 피폐해졌고 사회는 분열되었다. 지금 우리 국민은 내일에 대한 희망을 말하지 않는다. 어려운 사람도 잘살 수 있다는 희망의 사다리가 무너져 내렸다. 그것은 이 나라 국민들의 삶이 그 기반으로부터 위협받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를 정치인의 한 사람으로서 제대로 보지도 막지도 못한 것이 나의 반성적 성찰의 출발점이었다.


경기도지사 시절, 땀 흘리며 경기도 곳곳을 누비고 첨단산업을 유치하기 위해 전 세계를 돌았지만 정작 성장이 분배를 견인하지 못하는 문제에 대해 제대로 자각하지 못했다. 위로부터의 성장이 아래의 풍요를 가져다주지 못하는 잘못된 경제에 대한 통찰도 부족했다.


힘없는 사람들이 자신의 힘으로 해결하지 못하는 것을 대신 나서서 해결해 주는 것이 나라의 역할일진대, 우리 정치는 그것을 해내지 못했다. 힘 있는 사람, 대기업은 자기들이 다 알아서 한다. 힘없는 사람, 돈 없는 사람들도 잘살게 하는 것이 정치의 본분인데, 그것을 제대로 못한 것이다.


정치는 국민의 삶, 즉 민생을 지켜 내지 못했고, 국민은 희망을 잃어버렸다. 불안, 그리고 때로는 절망 속에서 자신이 살아남으려, 가족을 살리려 발버둥 치고 있다. 사람보다 돈이 우선한 사회, 힘 있는 사람만이 우대받고 판치는 세상이 되어 버렸다.


그 과정에서 대한민국은 지금 ‘분열’이라는 중병을 앓게 되었다. 부자와 서민, 강남과 강북, 수출과 내수, 대기업과 중소기업, 수도권과 지방, 도시와 농촌 그리고 크게 보면 남과 북까지 마치 가뭄에 갈라진 논바닥처럼 갈라지고 있다.


이 거대한 균열은 우리가 사랑하는 대한민국 공동체를 위태롭게 만들고 있다. 이 속에서 공동체를 지키는 소중한 가치들이 붕괴되고 있다.


외환 위기 이후 우리 사회에서 심화되어 온 이 양극화가 국민의 삶을 파괴하고, 대한민국 공동체를 분열시키고 있었음에도 우리는 이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다. 우리는 국민총생산과 수출, 외환 보유고, 국가신용 등급과 같은 경제지표에 함몰되어 사태를 제대로 보지 못했다.


내수의 불황, 중소기업과 자영업자의 위기, 비정규직 확산, 청년 실업, 부동산 거품 속에서 서민과 중산층의 삶이 전 방위적으로 파괴되었음을 간과했다.


민주 세력이 방심하고 분열하는 동안 국민의 삶은 더욱 피폐해졌다. 나 역시 외환 위기 이후 신자유주의 세계 흐름 속에서 민주화 이후의 선진화 담론에 도취되어 양극화가 우리 사회 전체를 분열시키는 것을 제대로 보지 못했다. 민주주의 정치 세력이 끝까지 지켰어야 할 서민과 중산층의 ‘민생’을 챙기지 못한 것이다.


달라져야 한다. 나부터 그래야 한다. 다시 민심과 민생의 바다로 뛰어들어야 한다. 그것이야말로 민주 세력의 일원으로서, 국민을 위해 일하는 정치인으로서 내게 주어진 과업이라고, 이제 나는 분명히 믿고 있다.


이 책에서 말하게 될 민생경제론

내가 하고자 하는 정치는 국민 생활을 최우선으로 하는 민생경제이고 민생정치다. 긴 말이 필요 없이 먹고사는 문제가 정치의 우선이어야 한다. 대다수 국민의 생존과 삶의 질을 보장하는 일이 정치의 중심이 되어야 한다. 그중에서도 특히 노동자와 농어민, 영세 자영업자, 중소기업을 적극 보살피는 역할이 내가 견지하는 정치의 본분이다.


국민 생활 우선의 민생정치는 구체적인 국민 생활의 문제에 관심을 갖는다. 무엇보다 국민의 기본 생활을 보장할 책임을 나라가 진다. 일자리, 주택, 교육, 의료, 노후 생활은 모두에게 보장되어야 할 대표적인 기본 생활이다.


국가 경제를 운영함에 있어서 일자리는 모든 정책에 우선해야 한다. 국가는 좋은 일자리를 풍부하게 제공해 국민들이 노동을 통해 행복을 누리는 사회를 만들어야 할 것이다.


무주택자들에게 싼값으로 주택이나 임대주택을 보급하거나 안정된 셋방을 공급하는 것도 국민 생활 정치의 기본이다.


교육은 사회적 생활의 수단일 뿐 아니라 삶의 가치 그 자체이고 복지의 핵심적 요소이다. 수준 높은 공교육을 제공해 사교육비의 멍에를 벗겨 주는 것은 당연한 국가의 책임이다.


보편적 의료 서비스는 복지사회의 가장 중요한 조건이다. 의료과학의 비약적 발전이 일부 상류층에게만 혜택이 되어서는 안 된다. 모든 사람이 소외받지 않고 높은 수준의 의료 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국민들이 필요로 하는 행복의 조건을 충족시켜 주어야 할 것이다.
고령 사회에서 노인들의 삶을 편안하게 뒷받침하는 것 또한 복지사회의 필수적 조건이다.


이와 같은 기본 생활의 영역 외에도 국민 생활 우선의 정치가 관심을 갖고 해답을 주어야 할 영역은 광범위하다. 쾌적한 생활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자연을 보호하고 생명 존중의 사회를 이룩하는 것도 새로운 사회의 요구이다.


국민을 범죄와 재해로부터 보호해 안전한 생활을 보장하는 것도 빼놓을 수 없다. 국가를 외침으로부터 보호하고 국민을 전쟁의 위협으로부터 해방시키는 것이야말로 국가의 책무 중 으뜸가는 책무이다. 이미 우리 사회의 새로운 가치는 무력을 키워서 전쟁에 대비하기보다 평화 체제를 확립해 전쟁의 조건을 없애는 것에 두어져 있다.


한민족으로 구성되어 있는 남북 간에는 화해와 협력을 통해 평화 체제를 구축하고 한반도 경제 공동체를 구성해 전쟁의 위협을 원천적으로 제거하고 공동의 번영을 추구하는 것, 그것이 우리가 가야 할 길이다.


민생경제의 토대가 튼튼하려면, 건전한 시장경제 질서의 확립이 요구된다. 시장경제는 합리적이고 효율적인 경제체제이다. 그러나 시장경제는 올바른 질서에 의해 유지되어야 한다.


시장경제가 자유로운 계약관계를 기본으로 하는 만큼, 공정한 거래 질서는 시장경제의 생명과도 같은 필수적 조건이다. 시장경제가 승자 독식의 불의한 사회를 만드는 도구가 되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기업의 지배 구조를 건전하게 유지하고 대기업의 횡포로부터 중소 하청 업체를 보호하는 것은 경제 정의 실현의 중요한 조건이 될 것이다. 노동자의 경영 참여를 통해 지배 구조의 건전성과 경영 효율성을 동시에 추구하는 것은 건강한 시장경제 질서의 확립을 위한 중요한 지표가 될 것이다.


성장 동력의 보호?육성은 복지사회의 경제적 기반을 확보하는 데 중요한 관건이 된다. 과학기술의 발전과 생명의 존엄성, 지속 가능한 발전에 대한 인류적 관심은 새로운 성장 동력의 발굴과 육성을 요구하고 있다.


대체에너지 산업을 비롯한 신성장 동력의 개발과 육성에 적극성을 보이는 것은 진보의 능력을 키우는 일이기도 하다. 이것이 유능한 진보의 모습이고 우리가 가야 할 길이다.


민생 속에 길이 있다

다시 민주당의 역할이 중요하다. 피폐해진 서민의 삶을 돌보고 모두가 함께 잘사는 세상을 만드는 데 민주당이 앞장서야 한다. 후퇴한 민주주의를 다시 바로 세워야 한다. 파탄이 난 남북 관계를 복원하고 평화 체제를 만들어야 한다.


민주당은 ‘서민과 중산층의 정당’을 표방한다. 그런데 왜 비정규직이 적게는 전체 노동자의 3분의 1에서 많게는 절반이나 되도록 방치했는지, 우리는 대답해야 한다.


영세 자영업자의 입장을 대변하는 우리 민주당은 골목 구석구석까지 들어서는 대형 마트에 대한 대책을 세워야 한다. 대책만 세울 것이 아니라 현장에서 함께 싸워야 한다.


서민들 아파트 값, 전셋값을 안정시킬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대기업의 횡포로부터 중소기업을 보호할 정책을 개발해야 한다. 우리 민주당은 민주,개혁,진보 세력을 대표해서 이런 국민 생활의 문제에 대답하고 해결책을 제시해야 한다.


민주당은 서민과 중산층의 생활을 정치 활동의 가장 우선순위에 두는 국민 생활 우선 정당이 되어야 한다. 민주?진보 세력은 자신들의 이념적 지향을 설파하기에 앞서서 자신들이 펴는 정치가 국민들에게 구체적이고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정치가 되도록 할 능력이 있는가를 스스로 묻고 대답해야 한다.


민주당은 민주,진보 세력을 모두 담을 큰 솥이 되어, 국민 모두에게 도움이 되는 정치를 펼쳐야 한다. 민주당은 민주?진보 세력의 대통합을 위해 선두에 서야 한다.


대한민국의 민주 세력이 더 큰 하나가 되는 것이 민주당의 정치적 목표가 되어야 한다. 더 큰 하나가 되고 더 큰 진보가 되는 것이 민주당과 진보 세력의 공통 목표가 되어야 한다.


오직 국민만을 생각하고 실질적으로 국민들 생활에 도움이 되는 실사구시의 정치가 우리가 가야 할 길이다. 국민이 기준이 되는 정치가 진보의 길이다. 국민들이 의지할 수 있는 유능한 정치가 진보의 길이 되어야 한다. 정치인을 위한 정치가 되어서는 안 된다. 국민을 크게 하나로 묶는 통 큰 정치를 해야 한다.


우리는 분열되어 가는 대한민국, 무너져 가는 대한민국 공동체의 희망을 함께 복원해야 한다. 우리가 함께 서있는 이곳 대한민국은 우리의 어버이와, 우리 자신과, 우리의 아이, 또 그 아이의 아이들이 품은 소중한 꿈이 영글어 갈 영원한 터전이다.


우리의 기약은, 우리가 살길은 더 나은 대한민국 공동체를 위해 오직 함께 전진하는 것이다. 뿔뿔이 나뉘어서, 서로를 밟고 가면서 이뤄 내는 전진은 환상일 뿐이다.


이제 우리 모두가 승리하는 길을 찾아야 한다. 이유는 한 가지이다. 그렇지 않으면 대한민국 공동체가 분열하고, 결국 우리 자신의 삶이 파멸될 것이기 때문이다.


사회적 지식과 유럽 정책 여행

경기도지사를 하고 장관을 하고 국회의원을 하고 당의 대표를 하고 대통령 후보 경선에 나서기도 하면서 내면으로는 두려움이 있었다. 책임감에 마음이 무겁고 고민스러울 때도 많았다. 순간의 내 판단과 결정이 우리 사회에 중요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때도 있었다.

다뤄야 하는 법안이나 정책의 범위가 지나치게 넓다 보니 전문적인 판단도 필요했고 동시에 정치적인 고려도 해야 했다. 내가 알아야 할 것 혹은 내가 모르는 것이 너무 많다는 자각 때문에 괴롭기도 했다. 소크라테스는 무지를 자각하는 것이 학문의 출발이라고 했는데, 정치에서도 맞는 말이 아닐 수 없었다.


그래서 공부했다. 관련 대학교수들과 전문가들을 모시고 강의도 듣고 정기적인 세미나도 했다. 춘천에 있을 때도 그랬지만, 서울로 올라와 민주당 대표를 맡고 있을 때부터는 매주 토요일이면 어김없이 공부를 했으니, 이제 2년이 넘었다.

경제,복지,노동,교육 등 주제도 다양했지만 중심적인 문제의식은 한국 사회의 대안에 관한 것이었다. 함께한 학자,전문가,지식인의 수도 헤아릴 수 없이 많았다.


그러나 공부 모임만으로는 부족했다. 공부 모임에 참여했던 많은 사람들은 늘 다른 나라의 경험과 사례를 말했다. 나도 직접 가서 보고 싶었다. 그들과 대화를 나눠 보고 싶었다. 그래서 유럽으로 정책 여행을 다녀왔다.


우리가 지금 해야 할 과제는 복지,노동,의료,교육,협동조합으로 압축된다. 그 길을 앞서 개척한 나라들이 있다. 스웨덴,네덜란드,영국,핀란드,스페인이다.


물론 우리가 무조건 그들을 따라야 하는 것은 아니며, 우리는 우리 나름의 조건과 고민이 있다. 그러나 앞선 나라들의 경험은 시행착오를 줄이고 실현 가능성에 대한 기대와 의지를 세워 줄 수 있다.


국가 간 비교 연구를 하는 학자들은 다른 나라에 가면 갑자기 자기 나라가 새롭게 보인다는 말을 자주 한다. 지금으로부터 2백여 년 전 프랑스의 젊은 귀족이었던 토크빌은 자기 나라인 프랑스의 미래를 고민해 보기 위해 미국에 갔고, 그 결과를 ??미국의 민주주의??라는 책에 담은 것으로 유명하다.


나 역시 30여 년 전 영국 유학 생활을 하면서 영국 정치보다는 한국 정치를 더 많이 생각했다. 당시 우리 사회는 권위주의 체제였다. 어떻게 하면 우리도 민주주의를 할 수 있을지, 민주주의를 하게 된다면 정부를 어떻게 운영할 수 있을지 하는 문제와 관련해, 영국이라는 관찰 및 비교의 대상은 내게 많은 자극을 주었다.


이번에 다녀온 유럽 정책 여행도 그랬다. 과거 유학생이었을 때나 여행객이었을 때와는 확연히 다른 경험이었다. 그들의 실험과 성과를 들여다보는 것도 좋았지만, 어떻게 시행착오를 줄였으며 서로 협력할 수 있었는지 그들의 경험을 듣는 것은 생생한 현장 체험이었다.


이 책은 이 모든 공부의 결과이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나만의 것이라기보다는 나의 생각을 이끌어 준 모든 사람들의 지식과 지혜를 모은, 일종의 집합적 지식 내지 사회적 지식이라고 할 수 있다. 모두에게 감사한다.

 

 

2012년 7월을 맞이하며


손학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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