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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이 있는 삶' 을 위해 -『저녁이 있는 삶』본문 중 발췌

작성자 : 관리자   |   등록일 : 2012-07-01   |   조회수 : 2187

‘저녁이 있는 삶’을 위해

 

 

우리는 정말 열심히 살았다. 산업화를 위해 헌신했고 범국민적 항쟁이라는 말에 걸맞게 민주화를 위해서도 최선을 다했다. 가장 길게 일하는 나라라는 오명을 들어가면서도 일하고 또 일했다.


외환 위기 때는 금도 모았고, 악정에 맞서 촛불도 들었고, 더 이상 비정규직이 희생되지 않는 사회를 위해 희망버스도 탔다. 그럼에도 우리들의 삶이 여전히 고단하고 희망을 찾기 어려운 형편이라면 뭔가 잘못돼도 크게 잘못된 것이다.


‘이스털린의 역설’Easterlin’s paradox이라는 말이 있다. 미국의 경제학자 리처드 이스털린Richard Easterlin 교수가 1974년 한 논문을 통해 발견한 것을 집약하는 개념이라고 할 수 있다.


그는 “경제가 성장하면 인간의 운명은 좋아질 수 있을까?”를 묻고는 그에 해당하는 경험 분석을 했다. 즉 1인당 국민소득의 증가와 실제 사람들이 느끼는 평균 행복감을 나라마다 조사한 것이다. 결과는 흥미로웠다. 기본적 필요를 충족시키는 소득수준을 갖게 된 이후에는, 경제가 성장해도 사람들의 행복감은 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다른 경제학자들도 다양한 조사를 통해 유사한 발견을 했다. 특히 일정 수준의 경제성장이 이루어지고 나면 오히려 스스로 평가하는 행복감self-rated happiness이 줄어드는 일도 있었다.


이런 연구 결과들이 말해 주는 것은 분명하다. 그것은 경제가 일정 규모 이상으로 발전하고 나면, 그때 이후 정부 정책의 목표는 경제성장 그 자체에 맞춰져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보다는 성장의 과실을 함께 나누고, 노사가 함께 협력적으로 일할 수 있게 하고, 개인 삶과 사회의 발전이 병행할 수 있는 길을 개척하는 것이 중요하다.


성장을 위해 우리 삶을 희생하는 것은, 더 이상 관용될 수 없다. 사람이 중심이 되는 경제, 사람이 중심이 되는 사회를 만드는 일은 그만큼 시급하고 절실한 일이다.


나는 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드는 정치, 사람들이 행복한 꿈을 꾸게 만드는 정치가 진짜 정치라고 생각한다.


시장 원리를 금과옥조처럼 높이 평가하는 사람들은 “일하는 것에 감사하라.”고 말하는데, 나는 지금껏 이보다 더 비인간적이고 불합리한 노동 윤리를 들어 본 적이 없다.


우리는 정당하게 쉬어야 한다. 그게 정의로운 일이다. 정시 퇴근제가 지켜져야 한다. 더 이상 휴가 가는 것이 회사 눈치 보는 일이 되어서는 안 된다. 휴가는 일하는 자의 권리다.


8시간 일하고 그 뒤에는 가족,이웃,연인,친구와 행복한 시간을 가질 수 있어야 한다. 책도 읽고 영화도 보고 음악도 듣고, 하고 싶은 공부도 할 수 있어야 한다.


늦게까지 일해야 하는 부모를 기다리다 지쳐 잠든 어린아이들에게도 행복한 저녁이 있어야 한다. 야간 학습을 하고 늦게까지 학원에 잡혀 있어야 하는 학생들의 삶에도 저녁이 있어야 한다.


낮에 공부하고 심야에 졸린 눈을 연신 비벼야 하는 아르바이트 학생들도, 낮에 일하는 것도 모자라 밤늦게까지 대리 운전을 해야 버틸 수 있는 가장도 저녁이 있는 삶을 꿈꿀 수 있어야 한다.


그런 사회가 되어야 일자리도 나눌 수 있다. 단순히 노동시간 단축과 일자리 창출만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지금 정규직은 야근까지 장시간 노동해야 가족들 건사하면서 겨우 살 수 있다. 그들의 삶은 힘들고 고단하다.


비정규직은 그렇게도 못해서 힘들어한다. 일하고 싶어도 일할 기회가 없는 사회가 되었다. 한쪽은 뼈 빠지게 일해야 해서 힘들다. 다른 쪽은 일자리가 없어서 힘들고 고단하다. 이건 정상적인 삶, 제대로 된 사회가 아니다.


저녁이 있는 삶은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경제, 그럴 수 있는 사회를 말한다. 내가 만들고자 최선을 다하고자 하는 대한민국의 미래 사회를 상징하는 말이다.


지금 한국 사회는 이스털린의 역설, 아니 그 함정에 빠져 있다. 성장해도 행복하지 않은 이 함정에서 과감하게 탈출해야 한다. 그래야 좋은 사회로 갈 수 있다.


열심히 일을 하면 행복한 저녁을 보낼 수 있는 삶이 주어져야 한다. 그것이 바로 공동체 시장경제, 즉 경제 민주주의, 복지, 진보적 성장을 통해 이루고자 하는 함께 잘사는 나라, 대한민국의 모습이다.


그것은 왜 성장해야 하는가를 묻는 것에서 무엇을 위한 성장인가를 묻고 성찰하는 것이다. 그런 성찰이 가능해야 하고, 그래야 비로소 그 위에서 한국 사회의 미래를 우리 모두가 함께 설계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나는 그런 눈으로 경제를 바라보겠다. 그런 눈으로 우리가 사는 사회를 성찰하겠다. 그런 눈으로 정치를 해가겠다.


저녁이 있는 삶을 말하고 민생 대통령이 되겠다는 선언만으로 이루어질 미래가 아니라는 것을 잘 안다. 그러나 우리는 여기에서 출발한다.


다다를 목표가 있어야 나그네는 지치지 않는다. 함께 꿈꿀 미래가 있고, 우리가 그 꿈을 믿고 나선다면 이루지 못할 것은 없다.

 


나는 당신의 따뜻한 저녁 밥상에 조용히 불을 밝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정말 그런 정치인이 되고 싶다.

 

 

손 학 규. (2012) 『저녁이 있는 삶』 서울:폴레티이아.  p.96 ~ p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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